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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가볼만한 곳/광산구

고봉 기대승이 태어난 광산구 너브실마을

 

 

조선시대 최대의 사상로맨스의 주인공 고봉 기대승 

퇴계 이황과 13년간 114통의 편지로 사단칠정을 논했던 조선시대 최대의 사상 로맨스의 주인공 고봉 기대승 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제2회 고봉 문화제가 글짓기 대회, 철학자의 길 걷기대회, 고봉학술대회, 서원마루 작은공연, 강연, 사진전시회, 시민참여프로그램 등을 중심으로 기대승 선생의 월봉서원에서 11월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제2회 월봉문화제 공지사항 참고

 

제1회 고봉문화제는 작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열렸으며 올해로 2회째를 맞는 고봉문화제에 맞춰 고봉 기대승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고봉의 종가가 사는 광산구 광산동 광곡마을(너브실마을)과 월봉서원, 묘소와 생가터를 중심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정확하지 않은 표현도 있을 것이지만 전문가가 아니기에 혹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즉시 수정해 나갈 것이니 넓은 혜량있으시길 바란다. 

 

 

 

 

고봉선생의 월봉서원이 있는 너브실 마을은 조선시대 1895년까지 나주부 광주군으로 나주땅이었으며 1896년 전라남도 광주군으로 개편되었다.

담양으로 일부 면이 편입되고 함평에서 일부 면이 편입되는 등 부침이 심하다가 일부가 광주시가 되고 일부는 광산군으로 남아있다가 198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모든 지역이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되었다.

 

광산구는 퇴계 이황과 격론을 나눈 호남의 대유학자 고봉 기대승(1527~1572)이 태어난 너브실 마을이 있으며, 그곳에 그의 덕을 기리는 월봉서원이 세워져 있다. 26살 차이가 나는 퇴계와 13년 동안 130통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과 사상을 논하던 사단칠정 사상 로맨스의 주인공이 바로 광산구 출신 기대승이며, 이곳에는 고봉 기대승 교육체험관이 같이 있어 각종 문화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또한 '떠나는 배' '빛나는 자취' 등의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선생도 송정동 솔머리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매년 용아 박용철 문학제가 열린다. 그런가 하면 국창 임방울(1904~1961)선생도 이곳 광산구 출신이며  임방울 국악제가  매년 9월 열리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5.18 윤상원열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광산구는 예로부터 광주를 대표하는 사상, 문학, 예술, 저항의 도시였다.

오늘은 그 중 고봉 기대승 선생의 월봉서원과 묘소가 있는 광산구 광산동 452번지 너브실 마을(광곡마을)을 찾았다.

 

 

 

너브실 마을은 네비게이션으로 찾기는 쉽지만 지도를 보고 찾기란 조금 어렵다.

호남대학교에서 송산대교를 지나 49번 지방도로로 들어서야 하며 다시 816번 지방도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은 네비게이션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광산구 임곡동 소재지에서 윤상원열사 생가터 방향으로 길을 따라 쭉 가면

월봉서원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보고 찾아가면 될 것이다.

 

너브실 마을에 들어서면 고봉 선생의 6대 손인 기언복이 숙종 때 터를 잡은 이래 300년 역사와 학풍을 이어온 애일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13대 손인 기세훈씨가 주축이 된 고봉학술원이 1991년 설립되어 자리하고 있다.

 

 

 

 

 

임곡동 너브실 마을 일대는 고봉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곳으로 사방 십여리는 온통 기씨 집성촌이었다.  

고봉의 생가터는 이곳에서 십리 가량 떨어진 신룡동에 있지만, 고봉의 묘소가 너부실 마을에 있으며, 수양하며 공부했다는 귀전암 터, 고봉 사후

아들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할 때 머물렀다는 칠송정과 기대승 선생을 모신 월봉서원이 마을 맨 뒤쪽에 있어 고봉 기대승의 유적이 집중되어있는 곳이다.

 

 

 

 

고봉의 아들 기효증(奇孝曾)이 3년간 시묘살이 할 때 머물렀던 칠송정

본래 ‘칠송정’이란 일곱 그루의 소나무에서 유래되었다지만, 현재 소나무는 없고 정자만 덩그렇게 있다. 고봉 기대승의 장자 효증(孝曾)은 그의 아버지가 ‘넣고 들이며, 가라앉히고 쌓아두어라’는 훈계를 따라서 호를 함재(涵齋)라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았고, 의곡 3천석을 모아 의주 행재소로 수송한 공으로 선조가 ‘군기사검정’이라는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너부실 마을로 내려와 초막을 짓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이에 선조가 함재의 의병활동에 감탄하여 ‘천리 길도 멀다 않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충의가 참으로 가상하다’고 칭송하며 7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는데 소나무의 ‘변하지 않으며 푸르고 청청한 선비정신’과 청고한 절개를 본받았다는데서 1650년에 칠송정을 세웠다고 한다. 

1905년 (광무 9년)에 기효회(寄孝會)가 중수하였다.

 

 

 

 

 

월봉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황토돌담길이 아주 특색이었다.

잘 정돈되고 정비된 모습에서 고봉선생의 기상을 엿보는 것 같아 입구에서 부터 몸과 마음이 정갈해 졌다.

 

 

 

 

 

교육관

이곳은 고봉 기대승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월봉서원 교육·체험관으로 2011년 4월 19일 개관하였다.

광주시가 11억 원을 들여 지은 교육·체험관은 1814㎡ 면적에 세 채의 독립건물로 이루어졌으며 접견실, 교육관, 체험관, 다목적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관에서는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 고봉 기대승 선생의 모든 것을 쉽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시관에는 행주 기씨 문중과 월봉서원이 소장한 고봉 기대승 선생의 유물도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고봉 신도비는 교육관 바로 뒤편에 있다.

 

 

 

 

 

백우정으로 올라가는 길은 황룡강 누리길이지만 철학자의 길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황룡강 누리길도 걸어야 할 길이지만, 월봉서원을 찾았다면 간편한 복장에 철학자의 길을 따라 백우산 정상을 한 바퀴 빙 돌아오는

느림투어도 해보길 권한다.

 

 

 

 

백우정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다.

상량문을 보니 단기4332년(1999년)으로 되어 있다.

 

 

 

 

 

월봉서원 뒷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백우산이라 부른다. 그래서 정자 이름도 백우정이다.

 

 

 

 

 

월봉서원 사무소와 화장실이 있는 건물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으니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면 될 것이다.

 

 

 

 

 

고봉 기대승 선생의 월봉서원이 있는 곳은 고봉의 발자취가 곳곳에 나 있다고 한다.

고봉선생 묘에서 백우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귀전암에서는 심신을 수양하고 학도들도 가르쳤다고 한다.

월봉서원과 고봉의 묘소까지 들었다면 고봉이 산책을 즐겼을 귀전암 터와 백우산 정상을 한 바퀴 빙 돌아 오는 산행길로도 적당한 곳이다.

내일은 고봉을 모신 월봉서원과 고봉 기대승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며, 계속해서 고봉의 묘소와 생가터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며 11월 1일 부터 2일까지 열리는 제2회 고봉문화제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1편, 조선시대 사상 최대로맨스의 주인공, 고봉 기대승을 찾아서 / 광산구 너브실 마을

2편, 제2회 고봉문화재가 열리는 월봉서원, / 고봉 기대승의 삶과 철학

3편, 기대승의 묘와 생가터를 찾아서/ 2회 고봉문화제

4편, 기쁘게 놀면 어디든 편안치 않으리오 / 제2회 고봉문화제

5편, 늦가을 너브실 마을을 찾아 / 제2회 고봉문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