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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가볼만한 곳/서구

서구8경 만귀정. 연꽃피는 시기에 가면 좋아요

 

양산보(梁山甫:1503∼1557)는 1530년 경 담양 남면에 별서(別墅)원림인 소쇄원을 지었는데요, 소쇄원은 송순, 기대승, 임억령, 김인후, 고경명, 정철, 송시열 등 당대의 학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정치와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소쇄원 근처인 고서에는 또 다른 원림인 명옥헌이 있는데요,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에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619∼1655)이 건물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꾼 원림이 바로 명옥헌입니다.

 

 

 

 

여기서 별서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는 곳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저택에서 조금 떨어져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어진 별저(別邸)같은 곳을 말하는데요, 원림(園林)은 동산과 숲의 자연 상태 그대로에다 적절한 위치에 인공적인 조경과 더불어 정자를 배치한 것을 원림이라고 합니다.

 

 

 

양산보와 오이정이 자연 상태 지형에 별서 원림인 소쇄원과 명옥헌을 지은 것에 비해 광주시 서구 세하동에 있는 장창우(張昌雨)의 만귀정은 그 두 곳과는 달리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정원인데요, 소쇄원과 명옥헌이 자연에다 약간의 인공미를 가미했다면, 만귀정은 극락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정자를 짓기 위해 연못을 팠고 인공적으로 동산을 만든 것이 틀린 것입니다.

 

 

 

 

장창우(1704~1774)는 1750년 경 극락강이 보이는 이곳에 초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는데 언제인가 없어지고 없던 곳에다 이곳에 동족마을을 이루며 살던 장창우의 후손들이 그 유덕을 기리기 위해 1934년 땅을 파고 연못을 만든 다음 파낸 흙으로 동산을 만들어 정면 2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만귀정을 중건했으며 1945년 중수해 현재에 이르렀는데요, 지금은 시 문화재자료 5호에 광주시 서구8경 중 하나로 지정되었습니다.

 

 

 

만귀정은 광주에서 송정리가는 광·송간 도로 극락교 교차로에서 서창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순환도로 옆길로 가면 되며, 송정리에서 온다면 광주비행장 지나 극락교에서 우회전하여 서창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동하마을과 만귀정 입구라는 조그만 비석이 있지만 도로 표지판이 커다랗게 걸려있기에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무릇 정자는 정자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멋이지만, 만귀정은 연못가를 빙 돌며 바라보는 정자의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주차장 쪽으로 와서 만귀정에 올라 영산강을 바라보고 연못을 가로질러 습향각, 묵향정사로 정자를 하나씩 올라보는 것이 만귀정을 탐방하는 순서입니다.

 

 

 

 

연못의 면적은 4,600㎡(약1,400평)인데요, 연못 둘레를 걸으며 수선화 사이로 보이는 만귀정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저절로 발길이 멈춥니다.

만귀정은 연꽃과 꽃 무릇 필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에는 “만귀정시회”라는 선비들의 모임이 있어 풍류와 오락을 즐기는 시인묵객들의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주요 영활촬영지 만귀정

 

만귀정은 40년 전인 1974년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꽃상여가 촬영된 곳인데요, 허장강이 상여 앞에서 소리를 하고 꽃상여는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엑스트라로 동원되어 맸다고 합니다. 당시 허장강은 이 영화로 제13회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요, 주연이었던 신성일과 윤정희는 상을 못 받아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또한 1960년에는 박복남, 복원규, 김해연 주연의 탈선춘향전을 찍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만귀정은 영화로도 널리 소개될 정도로 꽤 유명한 곳입니다.

 

 

 

 

봄이면 벚꽃, 여름엔 연꽃, 가을엔 꽃무릇, 겨울엔 소나무 위의 눈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만귀정.

 

만귀정은 터만 남은 자리에 후손들이 장창우의 덕을 기리기 위해 1934년에 세운 정자인데요, 만귀 장창우(晩歸 張昌雨)의 처음 이름은 한규(漢圭)이고 자(字)는 자칠(子七), 호(號)는 효우당(孝友堂)입니다.

 

 

 

 

본성(本性)이 효우(孝友)하여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고 양친의 상사 때에는 3년 동안 여묘(廬墓)하고 밤낮으로 호곡(號哭)하여 슬프게 우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효자라고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묘(廬墓)하던 자리에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풀이 자라지 못할 만큼 효성을 다하니 이에 감동한 산 속의 큰 짐승들이 신변을 지키기 위해 주위를 호위하였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만년에 지금의 서창 동하(洞荷) 마을 앞에 조그마한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자질이 뛰어난 향중(鄕中)의 수재를 모아 교육에 전심하였는데 정자 이름을 만귀(晩歸)라 한 것은 늙은 만년(晩年)에 이곳에서 한가로이 풍류(風流)를 즐기자는 뜻으로 붙였다고 합니다.

만귀정을 한 바퀴를 돌았으니 이제 만귀정 부터 차례로 세 개의 정자를 만나러 가 봅니다.

 

 

 

만귀정에 가면 꼭 봐야할 명소가 있는데요, 만귀정에서 두 번째 정자 습향각 쪽을 향해 제단처럼 생긴 기다란 석재 하나가 놓여 있는데, 석재의 앞뒤로는 취석(醉石), 성석(醒石)이라는 두 글자를 한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즉, 습향각으로 들어갈 때는 취하고, 나올 때는 깨서 나오라는 말로 만귀정에 흠뻑 취하여도 돌아서 갈 때는 깨서 가라는 뜻입니다.

 

 

 

그럼 취해서 건너볼까요?

다리 건너 보이는 것이 습향각(襲香閣)입니다.

 

 

 

만귀정 계단을 취한 채 내려와 오작교 같은 연못의 다리를 건너면 습향각이 나오는데, 습향각은 효우당 장창우의 7세손이자 송정읍장이었던 묵암 장안섭이 1940년에 지었으며 사방 1칸의 팔각지붕으로 주위의 연꽃 향기가 정자로 엄습하여 온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습향각을 지나면 묵암정사(默菴精舍)입니다.

 

 

 

묵암정사는 송정읍장이었던 묵암 장안섭의 공로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60년 광산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입니다.

 

 

 

이제 만귀정에서 부터 취해 습향각과 묵암정사를 거쳐 나왔으니 만귀정 연못을 다시 한 번 빙 돌아 서서히 깨어날 차례입니다.

 

 

 

 

연못에 세 개의 정자가 마치 서로 그리워하는 냥 서있는 풍경.

드라마 속 낯익은 풍경처럼 보이지 않나요? 언제인가 기억 속 한 켠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올 것 같은 만귀정은 정자로서는 참 보기 드믄 정자입니다.

 

 

瑞石明月(무등산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龍江漁火(용강에는 어부들의 불빛이 있네)

馬山淸風(마산에는 맑은 바람 산들거리며)

樂浦農船(낙포에는 농사를 위한 배가 오간다)

漁燈暮雲(어부들의 등불에 저녁 구름 피어나고)

松汀夜雪(송정에는 흰눈이 밤을 밝히며)

錦城落照(금성에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

野外長江(들 밖에는 길고 긴 강물이 흐르네)

 

만귀정 현판에 걸려있는 효우당의 만귀 8경을 보면 당시 얼마나 이 주변이 아름다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정자가 서로를 그리워하듯 서 있는 서구 8경 만귀정.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니 주말을 이용해 만귀정 나들이 한 번 계획에 보시면 어떨까요? 주변에는 서창향토문화마을과 영산강이 있어 문화와 자연을 한꺼번에 느낄 수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