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30주년인 오늘 광주 금남로는 그때 그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최루탄 가스와 전경만 없다 뿐이지, 1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민주대행진에서는 그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시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이 치열했지만, 이제는 농악대가 선두에 서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행진에 나선 축제의 장이 되었다.
1987년 1월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급급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전두환 정권은 4.13호헌 조치를 발표하고 그에 맞서 6월부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학생, 넥타이부대의 호헌철폐, 직선제개헌 등의 함성이 들불처럼 번져갔으며 마침내 6월 9일 연세대 학생이었던 고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6월 10일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 조작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6.10 국민대회)를 열었고 같은 날 전국 20개 이상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민주항쟁운동이 일어났다.
6.10민주항쟁으로 결국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와 김대중 사면 등을 약속하게 되었으니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민주화 운동의 대변혁이었다.
윤장현 광주시장, 이은방 광주시의회의장 등 관계, 정계, 광주시민사회운동가 등 당시 6.10민주항쟁을 주도했을 인사들을 비롯 많은 시민단체가 거리퍼레이드에 참석했다.
당시 카톨릭센터였던 지금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호헌철폐 등이 적힌 인쇄물이 뿌려지고...
1980년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